원자력발전 안전운영 교훈, 비판 그리고 과제(중)

독일과 일본의 원자력 정책의 조건과 특수성

2013-12-18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독일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법·제도적으로 탈핵을 선언하면서 원자력의 안전은 탈핵전환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원자력이 갖는 모든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함과 동시에 원자력이 갖는 경제적 가치보다는 위험과 관련된 비경제적 가치에 더욱 큰 비중을 둔 매우 진보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탈핵을 위해 독일사회는 에너지산업구조 변화를 위해 상당기간 준비해 왔고, 이러한 물리적 토대를 바탕으로 정치·사회적 요구로서 탈핵은 비로소 실현된다.

독일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핵심 기조는 기술 혁신과 개발의 동력 제공과 기후변화에 적극적 대응하는 에너지 정책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3대 조건으로 에너지 이용의 경제성, 공급의 안정성, 환경친화성을 제시하고 있다.

2020년까지 구체적인 정책목표로서 첫째,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대비 40% 감축. 둘째, 에너지 생산성을 1990년대 대비 20% 증진. 셋째, 전력생산에 있어 재생에너지 비율을 30%로 확대. 넷째,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난방비율을 14%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독일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의 중심에는 핵에너지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주요한 대안으로 재생 에너지로의 에너지 체제전환이 가능하다.

민영화된 전력산업의 환경

1998년의 자유화 조치 이전 전력산업에 대해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공급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공공적 독점산업으로 관리했다. 1998년 자유화 조치 이후에는 수직통합적인 전력회사들의 송배전 부문에서 발전과 판매를 분리한 후 발전 및 판매부문에 경쟁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1998년 에너지경제법(Energiewirtschaftsgesetz)이 제정되고, 국가는 시장친화적인 전력산업 환경을 위해 영역별 독점 폐지, 투자통제 폐지, 발전 및 판매 부문의 분리를 위한 첫 단계로서 회계분리를 도입했다.

전력시장 자유화 조치 이후 처음 2년간 소비자 전기요금은 급격하게 하락하는 듯 보였지만 이후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정부에서 부과하는 세금을 포함하는 부과금의 규모가 꾸준히 증가한 것과 관련된다.

2007년 기준 독일의 주택용 전기요금 수준은 EU 국가들 중 4위에 이르렀다. 민영화된 전력시장 구조에서 에너지에 대한 공공적인 인식보다는 효율성이 강조되었고, 자유로운 시장 경쟁은 에너지기업 4개사 중심의 과점이 형성됐다. 이러한 토대는 독일의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국가와 시민이 부담하게 되는 구조와 연결된다.

주정부는 인허가 및 규제당국 기구를 결정, 연방정부는 연방 상원의 동의를 얻어 주 규제당국을 규제하는 전반적인 지침을 발행했다. 이원적 구조는 독일연방정치체계 구조를 그대로 수용한 형태다. 각 주정부가 연방정부의 감독 하에 원자력안전규제가 실시됐다. 주 당국은 원자력법(Atomgesetz)에 의거 원자력 인허가를 발급할 권한을 가지며, 연방정부는 주당국에 대하여 헌법에 의거한 지도 역할을 수행했다. 이밖의 대표적인 원자력안전규제로는 기술검사협회, 원자로안전위원회, 설비·원자로안전협회, 방사선방호위원회 등 존재한다.

주정부는 연방환경·자연보호·원자로안전부(BMU)의 감독 하에 원자력에 관한 법규를 집행한다. 주 정부는 이를 위해 독자적인 부처를 설치하고, 그 부처에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대부분의 경우 주환경부가 주 단위에서 최고관청이 되며, 이곳은 집행책임과 원자력법 제7조의 규정에 의하여 허가 취득 후 시설 외부에서의 핵연료 취급, 처리 또는 그 이외의 이용 등 관할한다.

2000년 3월 재생가능에너지법(EEG: Erneuerbare-Energie-Gesetz) 제정됐다.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기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환경세 도입을 통한 산업에너지 효율 강화했고, 법체제 정비를 통해 재생가능 에너지산업에 유리하도록 규제를 정비했다. 재생 원료로 생산된 전력을 우선 매입하고 20년간 최소매입가격을 보장하는 것이 재생에너지법의 강력한 유인책이었으며 이를 통해 1999년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 소비의 약 5% 수준이었지만 10년 후 16%로 성장하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민영화된 전력시장 구조에서 에너지 전환정책에 대한 비용의 주체가 불특정 소비자에게 부담 지워지는 점과 원자력 육성시기와 같이 정부의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정책은 결국 민간 사업자에 대한 공적 자금 투여 및 각종 특혜로 가능했다. 재생에너지 전기 증가로 전기요금에 추가 부과되는 재생에너지 발전차액 할당금이 2013년부터 최대 47%까지 인상됨으로써 총 전기요금 상승했다. 발전차액 지원의 상승으로 소비자가 전기요금에서 부담하는 총액은 2012년 140억 유로에서 200억 유로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같은 재정으로 태양과 발전설비 확대, 전력망 사업자 적자 보상, 전기의 현물가격 하락, 발전차액 할당 면제 대상기업 확대에 투입됐다.

이 정책으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로는 2012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급속한 증가로 인한 전력망 사업자의 재생에너지 전기 통합에 따른 비용인상으로 전력망 사업자의 적자 증가 및 적자보존을 재생에너지 육성의 명목으로 소비자들이 부담하고 있다.

독일의 원전폐쇄 및 탈핵정책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첫째, 원자력 의존적인 에너지 정책의 경로의존성은 핵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에 직면할 경우 충분히 수정이 가능 하다는 점이다. 원자력 정책은 현세대와 한 국가가 선택해서 확산시킬 수 없는 전세대와 지구적 차원의 정치 아젠다임을 재고해야 한다. 둘째, 폐쇄적인 정책구조로는 원자력 안전이 담보되기 어렵다. 한 사회의 핵에너지를 매개로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이해가 정치적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경로가 요구된다. 셋째,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와 더불어 에너지 안정성만큼 에너지 공공성 역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의제다.

일본 원자력산업과 안전규제

일본의 원자력규제 제도는 우리나라 원자력 법령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큰 사례다. 일본의 원자력 규제제도는 1974년 원자력선 무츠호(號) 방사능 누출사고, 1999년 JCO 핵임계사고,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경험하면서 수차례 수정 보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각 부처의 책임을 강조하는 행정체계로 인해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까지 일본 원자력규제는‘더블체크’ 시스템을 표방했으나 현실적인 규제책으로 적용되지 못했고,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조하는 원자력규제위원회 설립은 일본 원자력규제정책의 새로운 시발점을 의미했다. 수차례 대규모 사고가 있을 때마다 간담회 등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묻고 내각 결정과 국회 논의를 통해 원자력규제 정책이 수정, 보완된 것은 단편적인 우리나라의 원자력규제 정책논의를 두고 볼 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큰 방식이다. 소수의 전문가와 관료들만의 논의가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와 이전 시스템을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일본 원자력규제 시스템은 보완되어 왔다.

원자력규제 제도는 단지 기술적인 검토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합의의 과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의 원자력규제 제도 변화는 수차례 뼈아픈 사고를 겪으며 그 교훈을 제도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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