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는 울림을 준다”
[이덕무 詩의 온도]③ 11월14일 술에 취해(十一月十四日醉)
2020-03-31 한정주 역사평론가
깨끗한 매미와 향기로운 귤 마음에 간직하니 潔蟬馨橘素心存
세상사 시끄러운 일 내 이미 잊었노라 餘外紛囂我已諼
불을 공중에 살라본들 저절로 꺼질 것이고 擧火焚空終自息
칼로 물을 벤다 한들 다시 무슨 흔적이 있겠는가 持刀割水復何痕
‘어리석다’는 한 글자를 어찌 모면하겠냐마는 癡之一字烏能免
온갖 서적 널리 읽어 입에 담을 뿐이네 博矣羣書雅所言
넓고 넓은 천지간 초가집에 살며 磊落乾坤茅屋者
맑은 소리 연주하며 밤낮을 즐기네 商聲高奏永晨昏
『아정유고 2』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재물, 권력, 명예, 출세, 이익 따위는 이덕무에게 세상사 시끄러운 일일 뿐이다. 그것을 얻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짓은 불로 허공을 사르거나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허망하고 망령된 일이다.
매미에 담은 맑은 기운과 귤에 담은 향기로운 마음이 내 영혼에 깊게 스며든다. 좋은 시는 울림을 준다. 시에 담긴 메시지 혹은 시가 던지는 시그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작자와 독자는 교감한다. 오래도록 살아남는 시는 ‘공감’, ‘교감’, ‘울림’을 주는 시다. 내게 오래도록 살아남아 울림을 주는 시를 떠올리며 서가에 꽂힌 시집을 뒤적여본다. 손에 잡힌 책은 곽재구의 시집 ‘사평역에서’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 그믐처럼 몇은 졸고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그래 지금은 모두들 /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사평역에서』, 창비, 1983. 118〜119쪽)
이 시에 담긴 삶의 애환과 울분에 공감했기 때문이고 시인의 설움과 나의 설움이 교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