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이덕무 詩의 온도](84) 쓸쓸한 보금자리

2021-12-14     한정주 고전연구가

不識公卿名 공경(公卿)의 명예 관심 없고
頗知圖書趣 도서(圖書) 취미만 알 뿐이네
庭木如我心 뜰에 서 있는 나무 내 마음 같아
翼然淸風聚 우뚝 솟아 맑은 바람 모으네. (재번역)
『영처시고 2』

동쪽 벽에 쓰다

澗水之濱斜掩扉 시냇가 비스듬히 사립문 닫아걸고
滿庭晨露栗花稀 마당 가득 새벽이슬 밤나무 꽃 드문드문
客來問我無心否 손님 나를 찾아 무심(無心)한지 유심(有心)한지 질문하면
笑指東林雲自飛 빙긋이 웃고 동쪽 숲 절로 나는 구름 가리키네. (재번역)
『영처시고 2』

[한정주=고전연구가] 시가 그 사람인 까닭은 무엇인가. 자신만의 뜻과 기운, 감성과 생각을 담은 시를 짓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를 본뜨거나 흉내 내거나 모방한다면 그 시는 자신의 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닮거나 혹은 비슷한 시라고 해야 한다. 자신의 시가 진짜 시라면 다른 사람을 닮거나 비슷한 시는 가짜 시다. 자신이 지었는데도 자신의 시가 아닌 시가 다른 사람의 뜻과 기운, 감성과 생각을 본뜨거나 흉내 내거나 모방해 지은 시다. 그 시에는 ‘진짜 나’가 아닌 ‘가짜 나’가 있을 뿐이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뜻과 기운, 감성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내가 ‘진짜 나’다. ‘진짜 나’가 있는 시가 바로 진짜 시다. “시가 바로 그 사람이다”는 말의 참된 의미는 ‘진짜 나의 진짜 시’를 지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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