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민중의 욕망 vs 권력의 욕망

[고전 인생수업]⑱ 일연 『삼국유사』…민중, 욕망하는 삶의 세계Ⅴ

2023-12-26     한정주 고전연구가
강원도
[한정주=고전연구가] 미(美), 즉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역시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수로부인’ 설화를 보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민중의 욕망과 권력의 욕망이 어떻게 다른지 극명하게 비교할 수 있다. 민중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대로 향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하지만 권력은 그 아름다움을 빼앗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로부인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가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천 길 낭떠러지 높이에 활짝 핀 철쭉을 바라보던 수로부인은 주위 사람들에게 “누가 내게 저 꽃을 꺾어 바치겠소?”라고 물었다. 모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옆에서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그 꽃을 꺾어 와서 노래까지 지어 수로부인에게 바쳤다. 그 노래가 바로 유명한 ‘헌화가(獻花歌)’이다.

“자줏빛 바위 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기이 제2」 ‘수로부인’, 2008, p156)

다시 이틀째 길을 가던 수로부인은 또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나타나 수로부인을 낚아채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때 또다시 한 노인이 나타나 순정공에게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강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순정공이 노인의 말을 따르자 용은 어쩔 수 없이 수로부인을 데리고 나왔다. 습니에 실려 있는 수로부인 설화에 따르면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 가를 지날 때마다 신물(神物)에게 빼앗겼으므로 여러 사람이 해가(海歌)를 불러서” 번번이 구해냈다고 한다. 그 해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약탈해 간 죄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다 바치지 않으면
그물을 쳐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기이 제2」 ‘수로부인’, 2008, p155)

수로부인을 납치한 바다의 용 또는 신물은 그녀가 지나가는 지방을 지배하는 권력자를 상징한다. 반면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친 노인, 또한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조언한 노인, 그리고 노래를 불러 번번이 수로부인을 구해낸 사람들은 일반 민중을 상징한다. 권력자들이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홀로 독차지하려고 한다면 민중들은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대로 바라보면서 지켜주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수로부인 설화’는 권력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민중의 입장에서 창작한 설화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신화의 세계는 이렇듯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욕망이 얼마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가를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욕망의 모습을 인식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인간 본질과 삶의 본성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신화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다. 욕망하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화를 읽어야 한다.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원초적 욕망을 신화보다 더 깊고 넓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신화가 담고 있는 욕망하는 인간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내고 있는 온갖 기담과 괴담 그리고 가짜뉴스 속에 감춰져 있는 욕망의 본질 역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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