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여와 자상의 우화…운명은 필연적인가 우연적인가

[장자 인문학] 제1장 운명에 대하여③

2024-11-26     한정주 고전연구가

[한정주=고전연구가] 첫 번째 이야기 호자와 무당 계함의 우화가 ‘운명의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장자의 견해를 읽을 수 있다면 두 번째 이야기 자여와 자상의 우화에서는 ‘운명을 구성하는 힘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장자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우화는 『장자』 「내편」 ‘대종사(大宗師)’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우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여는 자상과 친구 사이이다. 장맛비가 열흘이 다 되도록 그치지 않자 자여는 가난한 자상이 굶주림에 고통을 겪지 않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음식을 싸가지고 자상을 찾아간 자여가 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곡소리인 듯하다가 다시 들으면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상한 소리가 거문고 연주에 실려 들려왔다.

“아버지 탓인가? 어머니 탓인가? 하늘 탓인가? 사람 탓인가?”

자여가 집으로 들어가서 보니 그 이상한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친구 자상이었다. 자여가 왜 그런 이상한 노래를 하느냐고 묻자 자상은 이렇게 대답한다.

“온종일 누가 나의 삶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는지 곰곰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라셨겠는가? 하늘과 땅은 사사로운 마음이 없어서 누군가에게는 더 많이 주고 누군가에는 더 적게 주지 않으니 하늘과 땅인들 나만 가난하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의 삶을 이렇게 만든 존재를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가 없어서 그런 노래를 부른 것이네. 그렇다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장자가 이 우화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운명은 필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우연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어떤 일이 원인과 이유 혹은 까닭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을 필연(必然)이라고 한다. 반면에 원인, 이유, 까닭 없이 그렇게 된 것을 우연(偶然)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필연에는 인과율(因果律)과 법칙성이, 우연에는 비인과율(非因果律)과 무법칙성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운명에 작용하는 힘은 필연성, 인과율, 법칙성일까, 아니면 우연성, 비인과율, 무법칙성일까.

장자는 우화 속 자상의 가난과 곤궁에는 원인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그의 가난과 곤궁은 삶의 우연한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우리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원인과 이유가 있고 부자인 사람에게는 부유한 원인과 이유가 있고, 성공한 사람에게는 성공의 원인과 이유가 있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실패의 원인과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또한 우리는 우화 속 자상처럼 가난과 곤궁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그 원인과 이유가 노력 부족, 의지 부족,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노력해도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부유한 사람이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높아도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아도 부유한 사람이 있다. 능력이 뛰어나도 가난한 사람이 있고 능력이 모자라도 부자인 사람이 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같은 이치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원인과 이유에서 특정한 결과가 나온다는 해석은 따라서 결과에 따른 해석, 즉 결과론적 해석의 오류일 뿐이다. 만약 특정한 원인과 이유가 특정한 결과를 낳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그 원인과 이유에서는 필연적으로 그 결과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말하는 성공의 원인과 이유 그대로 행동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성공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실패한다.

왜 그런가. 우연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연의 개입 때문에 A라는 원인과 이유에서 B라는 특정한 결과만 아니라 B에서부터 Z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의 관계, 즉 특정한 결과에는 특정한 원인과 이유가 있다는 주장에도 적용된다. 다시 말해 Z라는 결과에도 A와 B의 원인과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A에서부터 Y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원인과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운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연의 개입 때문에 사람은 자기 삶(운명)의 어떤 결과도 예측하거나 계산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또한 삶(운명)의 결과에 대해 원인과 이유를 따져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화살을 맞고 죽음의 문턱에 이른 사람이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고 어떻게 만든 화살인지,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따져 묻는 것처럼 말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의 운명이, 부유한 사람에게는 부자의 운명이, 성공한 사람에게는 성공의 운명이, 실패한 사람에게는 실패의 운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우연한 이유로 가난한 것이고 부자인 사람은 우연한 원인으로 부유한 것이고 성공한 사람은 우연한 이유로 성공한 것이고 실패한 사람 역시 우연한 원인으로 실패한 것일 뿐이다.

우화 속 자상의 가난과 곤궁 역시 필연적인 원인과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우연한 원인과 이유에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고 부유한 사람 역시 얼마든지 가난해질 수 있으며 성공한 사람도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고, 실패한 사람 역시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다.

운명이 필연성, 인과율, 법칙성의 지배를 받는다면 인간의 의지나 능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나 공간은 제한된다. 특정한 원인과 이유에서는 특정한 결과만 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운명이 우연성, 비인과율, 무법칙성의 지배를 받는다면 인간의 의지나 능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나 공간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운명은 우연적인 것이다’는 말의 뜻은 다시 말해 운명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라는 것, 즉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운명을 구성하는 힘에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 작용한다는 장자의 철학 속에는 운명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긍정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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