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년 시간 뛰어넘는 이덕무의 여덟 가지 글쓰기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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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 시간 뛰어넘는 이덕무의 여덟 가지 글쓰기 비결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3.2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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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 옛사람 답습하거나 흉내내지 않는 자신의 색깔이 담긴 시

지난 2018년 4월5일부터 연재됐던 [명심보감 인문학]에 이어 오늘부터는 [이덕무 詩의 온도]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조대왕 시절을 살았던 이덕무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옛글이나 다른 사람의 글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감정과 생각의 표현만이 고유한 독창성을 지닌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자기 안에 온축(蘊蓄)돼 있는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한 문장이 옛글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하고 창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86편의 시에서는 이덕무의 독창적인 글쓰기 세계와 함께 조선선비의 아름다운 감성을 엿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시(詩)’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이덕무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 모든 존재와 대화하는 방법이자 세상 모든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통로였다. 더욱이 이덕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각자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때문에 이덕무의 시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존재, 즉 자연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위로”가 담겨 있다. 이덕무는 소품문(에세이) 못지않게 시를 잘 썼다. 당대의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에세이스트보다는 오히려 시인으로 더 유명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시인 이덕무에 대해 평가한 사람의 면면과 그 비평을 접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덕무의 사우(師友)인 연암 박지원은 이덕무의 시를 가리켜 ‘조선의 국풍(國風)’이라고 극찬했고, 정조대왕은 “이덕무의 시는 우아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청나라 최고 지식인 중 한 사람인 이조원과 반정균은 이덕무의 시는 “기이하고 오묘하고 기발하고 비범하고 호방하고 장대하고 고상하고 맑을 뿐만 아니라 매우 새롭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조선 말기 최고의 비평가라고 할 수 있는 김택영은 이덕무의 시를 ‘기궤첨신(奇詭尖新)’의 네 글자로 요약해 비평했는데, 이 말은 이덕무가 ‘기이하고 괴이하고 날카롭고 새로운 경지’의 시 세계를 개척했다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덕무는 어떤 시를 썼기에 이토록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문장가이자 비평가였던 이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걸까. 첫째, 이덕무는 ‘동심(赤子之心)의 시’를 썼다. 이덕무는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항상 거짓 꾸밈없는 진솔한 시를 썼다. 때문에 이덕무의 시에는 자연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진실하고 솔직한 감성, 기운, 마음, 뜻, 느낌, 생각들이 잘 담겨 있다. 생동(生動)하는 이덕무 시의 생명력은 다름 아닌 동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이덕무는 ‘일상의 시’를 썼다. 이덕무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자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특별한 곳에서 시를 찾지 않았다. 이덕무에게는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시의 소재요 주제였다. 특히 이덕무는 사람들이 별반 가치나 의미가 없다고 무심히 지나치는 주변의 하찮고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시적 언어로 포착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인이었다. 셋째, 이덕무는 개성적인 시를 썼다. 개성적인 시를 썼다는 말은 옛사람을 답습하거나 흉내 내는 혹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시를 쓰지 않고 자신의 색깔이 담긴 시를 썼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이덕무는 아무리 잘 쓴 시라고 할지라도 옛사람과 다른 사람의 시를 닮거나 비슷한 시는 가짜 시요 죽은 시라고 말했다. 반대로 비록 거칠고 조잡하더라도 자신만의 감성, 기운, 뜻이 담긴 시는 진짜 시요 살아 있는 시라고 했다. 넷째 이덕무는 실험적인 시를 썼다. 옛사람의 시를 닮지 않은, 또한 다른 사람의 시와 비슷하지 않은 개성적인 시를 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덕무는 그 방법을 실험적인 시, 모험적인 시, 도전적인 시에서 찾았다. 실험과 모험과 도전이 없다면 어떻게 새로운 시가 나올 수 있겠는가. 창작이란 새로운 글을 쓴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답습, 모방, 흉내가 창작의 적이라면 실험, 모험, 도전은 창작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실험과 모험과 도전이 없었다면 기궤첨신(奇詭尖新)한 이덕무의 시는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섯째 이덕무는 ‘조선의 시’를 썼다. 연암 박지원은 이덕무의 새로운 시를 가리켜 시의 전범이자 규범이자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시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혹평하는 당대 사람들을 향해 조선 사람이 조선의 시를 써야지 왜 중국의 시를 쓰느냐면서 “이덕무의 시야말로 조선 사람이 쓴 조선의 시이기 때문에 마땅히 조선의 국풍(國風)으로 삼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앞서 살펴본 동심의 시, 일상의 시, 개성적인 시, 실험적인 시의 미학이 집약된 이덕무의 시학(詩學)이 바로 ‘중국 사람의 시’와는 다른 ‘조선 사람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사람들이 시의 전범이라고 숭상한 이백과 두보 등 중국의 시는 중국의 풍속과 풍경, 중국 사람의 감성과 기운 그리고 뜻과 생각이 담겨 있을 뿐이다. 이덕무는 자신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조선의 풍속과 풍경, 조선 사람의 감성과 기운 그리고 뜻과 생각이 담긴 시를 쓸 뿐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 사람이 중국 사람을 닮으려고 하거나 비슷해지려고 하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다른 시와 닮거나 비슷한 시는 이덕무에게 가짜 시요, 죽은 시에 불과한데 어떻게 중국의 시와 닮거나 비슷한 시를 쓸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이덕무의 미학은 이덕무의 문장 철학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독자들이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덕무의 글쓰기는 여덟 가지 비결로 요약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라. 둘째,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보고 적어라. 셋째,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로 글을 써라. 넷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라. 다섯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말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글을 써라. 여섯째,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글을 써라. 일곱째, 일상 속에서 글을 찾고 일상 속에서 글을 써라. 여덟째, 온 몸으로 글을 써라. 다시 말해 나의 삶과 나 자신을 온전히 글에 담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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