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展紛紛白 휘영청 달 하얀 빛 흩뿌리고
宵排淰淰寒 초저녁 차가운 기운 가득하네
螺煙生妙想 맴도는 담배 연기 기발한 착상
墨瀑動遐觀 거침없는 먹 놀림 먼 하늘 바라보네
酒猛杯仍減 술은 독해 술잔 줄어들고
詩尖字未安 시는 날카로워 글자 안정되지 않네
靈襟延夜氣 밤기운 감돌아 마음 설레고
眉宇蘊春巒 눈썹 언저리 봄 산 맺혀있네
韻友逢何闊 시우(詩友) 어찌 그리 보기 힘든지!
令辰値亦難 좋은 시절 만나기 어려운데
霎離其奈戀 잠시 보고 이별하면 그리워 어찌하랴!
轟笑以爲歡 떠들썩하게 웃고 즐겨보리
放或歸眞樸 거리낌 없어 간혹 진실하고 순박하지만
痴寧諱冷酸 어리석음 어찌 괴로움 감추랴!
厚霜輝老瓦 오래된 기와 짙은 서리 빛나고
散菊卓脩欄 쓸쓸한 난간 흩어진 국화 도드라지네
坐久鍾音遍 오래 앉아 있자니 종소리 널리 퍼지고
唾罷燭影團 졸다 깨보니 촛불 그림자 둥글게 모였네
曉鴻嘶咽咽 새벽 기러기 목 놓아 애처럽게 울어대고
群翮渺無端 새 무리 끝없이 아득하네 (재번역)
『아정유고 2』
[한정주=고전연구가] ‘관재’는 백탑파의 시모임이 자주 열린 아지트였다. 관재의 주인은 서상수다. 관재는 관헌이라고도 불렀는데 서상수의 서재였다.
관재는 이덕무가 대사동으로 이사한 후 즐겨찾았던 곳인 까닭에 그의 시 가운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서상수는 이덕무의 경제적 후견인이었다.
책에 미친 바보였던 이덕무는 비록 작다고 해도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싶어했다. 하지만 가난하고 궁색한 살림 때문에 서재를 짓는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서상수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고서(古書)를 팔아 이덕무에게 바깥채 서재 건축 비용으로 건네주었다. 그
렇게 완성된 이덕무의 서재가 8칸 초가집으로 된 ‘청장서옥(靑莊書屋)’이다. 서상수가 이렇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서상수는 서화고동(書畵古董), 즉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또 골동품에 일가견이 있는 선비였다. 박지원은 『연암집』의 ‘필세설(筆洗說)’에서 “서상수는 감상의 안목과 식견이 뛰어나 세상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은 골동품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는 ”당대 최고의 수집가이자 감정가라고 극찬했다. 시·서·화 감상과 골동품 감식에서 조선 최고의 안목을 지닌 사람이 바로 서상수라는 얘기다.
이렇듯 조선 최고의 감상가이자 감식가였던 서상수였기에 탁월한 재주와 식견에도 경제적 궁핍함 때문에 제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이덕무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다. 이런 까닭에 서상수는 자신이 끔찍이 아끼는 고서까지 팔아 이덕무를 도와주는 경제적 후견인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박제가는 관재의 시모임에 대해 “봄·가을의 여유로운 날이면 함께 어울려서 차를 마시고 그림을 보고 시를 읊으면서 즐거움을 삼았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단오날 관헌에 모여서’라는 이덕무의 시를 보면-마치 박제가의 말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은 것처럼-함께 차 마시고 그림 보며 시를 읊었던 백탑파의 시모임을 상상해볼 수 있다.
“새빨간 석류꽃 파란 가지 감싸듯 / 상렴에 비친 그림자 한낮 햇빛 따라 도네 / 향로 연기 꺼질 듯 말 듯 찻물 끓어 소리 내니 / 이 바로 세상 숨어 사는 이 그림 감상 좋을 때네.” (재번역임)
단오는 음력 5월5일이다. 이때는 석류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다. 그 석류꽃이 파란 가지를 모두 불태워버릴 듯 새빨갛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새빨간 석류꽃은 ‘상렴(緗簾)’, 곧 노란빛깔의 발에 비친 그림자가 되어 한낮의 햇빛을 따라 돌아간다.
방 안에는 향로의 향 연기가 꺼질 듯 말 듯 가물거리고 다관(茶館)에서는 찻물이 끓는다. 그러한 가운데 세상 숨어 사는 이는 그림 감상을 즐긴다.
아마도 이 시에서 말하는 다관과 그림은 서상수가 소장하고 있던 골동품과 명화(名畵)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관재에서 이루어진 시모임의 운치와 정취와 품격을 함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멋진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