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주=고전연구가] ‘가정과 가족’의 뒤를 이어 우리를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표준 인간’으로 훈육하고 양성하는 곳은 다름 아닌 ‘학교와 선생’이다.
특히 가정이 관습과 예절의 훈육을 통해 개인적 수준에서 표준인간을 양성한다면 학교는 단체 생활의 규칙과 규율을 훈육하는 방식으로 집단적 수준에서 표준 인간을 양성한다. 이 때문에 학교의 훈육과 양성은 개인에게 가정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제적이고 폭력적이며 잔혹하다.
단체 생활의 규칙과 규율이 지배하는 학교는 ‘자유’라는 인간 본성과 활력이 숨 쉴 어떤 공간도 용납하지 않는 곳이다. 거기에는 ‘집단’만 존재하지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는 군국주의와 전쟁국가 일본이 필요로 하는 황국신민과 전쟁기계를 집단적으로 훈육하는 예비 양성소나 다름없었다. 이 시대 학교 조직은 군대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청춘의 감격’, ‘젊은이의 긍지’, ‘고교생의 기개’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학교에서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결코 인간을 단념할 수 없어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하고 있는” 요조의 서글픈 익살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교복 차림의 “악몽 비슷한 섬뜩한 것이 느껴지는 이상한” 두 번째 사진 속 얼굴은 이 시절 요조의 자화상이다.
“저한테는 단체 생활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또 ‘청춘의 감격’이라든가 ‘젊은이의 긍지’라든가 하는 말은 듣기만 해도 닭살이 돋았고 ‘고교생의 기개’라느니 하는 것은 도저히 좇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교실도 기숙사도 비뚤어진 성욕의 쓰레기통으로 느껴졌으며, 저의 완벽에 가까운 익살도 거기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p43)
이 무렵 요조가 합법보다 비합법에 강렬하게 매력을 느꼈던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합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기준, 즉 표준이다. 이 기준(표준)을 준수하는 것이 다름 아닌 합법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바로 비합법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합법은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표준 인간을 훈육·양성하는 가장 강력하고 강제적이며 폭력적인 수단이다. 기준(법)을 준수하는 인간이 표준 인간이라면 실격당한 인간은 기준(법)에서 벗어난 인간이다. 실격당한 인간의 삶을 희망하는 요조가 합법으로부터의 탈주, 즉 비합법을 상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비합법. 저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즐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그것에서는 한없는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도저히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한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p51)
실격당한 인간을 희망하는 삶이란 국가와 사회의 기준(법)으로부터 자격을 상실당한 인간들의 삶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공감하며 연대하는 삶이다.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표준 인간의 훈육과 양성으로부터 탈주한 실격당한 인간의 새로운 삶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롭게 구성된다.
“‘음지의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비참한 패자, 또는 악덕한 자를 지칭하는 말 같습니다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 세상에서 떳떳하지 못한 놈으로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다정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다정한 마음’은 저 자신도 황홀해질 정도로 정다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p51)
요조에게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란 표준인간, 즉 황국신민과 전쟁기계가 되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은 요조를 두렵게 할 뿐이다. 요조에게 합법적인 인간, 즉 표준 인간의 삶이 지옥 같은 삶이라면 비합법적인 인간, 즉 실격당한 인간의 삶은 안락한 삶이다. 이 때문에 요조는 “매일 밤 잠 못 이루며 지옥에서 신음하기보다는” 차라리 비합법의 삶을 살다가 체포되어 감옥에서 생활하는 쪽이 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사진 속의 얼굴은 요조 자신조차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눈을 뜨고 다시 봐도 생각나지 않은 얼굴”, “단지 역겹고 짜증나고 눈길을 돌리고 싶은 느낌만 드는 기묘한 얼굴의 남자”이다. 이제 실격당한 인간을 희망하는 요조의 퇴폐적이고 타락한 삶에 대해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실격당한 인간의 삶을 상상하고 희망하는 사람에게 국가와 사회가 퍼부어대는 저주의 주문이자 욕설이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너는 너 자신의 끔찍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을 알아라!”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p93)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