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일렁이듯 겹겹으로 중첩되는 산 능선”…2박3일 덕유산 육구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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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일렁이듯 겹겹으로 중첩되는 산 능선”…2박3일 덕유산 육구종주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24.08.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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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64) 덕유산을 품넓은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게 하는 중봉 향적봉 덕유평전

지난해 봄 지리산 종주길에 나서서 감동적인 휘날레를 함께했던 이병섭·박길현·류병생. 이번 산행에 새로 합류한 육심관 친구와 2박3일 일정으로 덕유산 육구종주 산행을 떠났다.

후덥덥한 여름 종주 산행은 더위와 체력 부담이 커 힘들고 어려울진데 우리는 나이를 모르는지 아니면 산길의 갈증이 깊어졌나 삼복더위 종주길의 압박이 생길 만도 하건만 모두 서슴없이 “예스”였다.

단톡방을 만들어 코스를 살피고 식량과 준비물등 작전을 짜니 마음도 잘 모아졌다. 각자의 길을 달려 함양군 서상터미널에서 집결해 픽업 차량으로 해발 734m 깊숙한 오지 육십령 민박집에 해거름할 무렵 도착했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 민박집의 식탁에 둘러앉아 지글지글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에 이심전심으로 소주 한 잔 하니 궁했던 속이 가라앉고 따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한 성찬이 됐다. 똥돼지 살점과 제법 늦도록 몸속에 소주를 다정하게 채워갔다. “술 익자 채 장수 지나간다”는 말이 있듯이 여름휴가 기간과 겹쳐 때마침 시간도 자유롭다.

이틑날 새벽 민박집 주인아주머니의 된장찌개 백반을 부지런히 먹고 배낭 하나씩 둘러매 보니 손저울 측정 약 15kg의 무근한 압박이 가해져 왔다. 등산화 끈을 바짝 동여맨 후 육중한 육십령 표지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팽팽한 긴장감속에 산속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 땡볕 불볕더위와 한판 대결이 펼쳐지는 장정의 시간이다.

육십령에서-할미봉-서봉-남덕유산-삿갓봉-무룡산-백암봉-중봉-향적봉-백련사-무주구천동까지 도상거리 32km를 걷는 쉽지 않은 고산준령의 능선길이다.

들머리 육십령은 덕유산 종주산행의 출발지이며 해발 734m의 높고 가파른 고개로 소백산맥의 한 자락인 덕유산과 백운산 사이 안부에 위치한다.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의 경계, 영·호남이 맞닿은 교통로이기도 하다.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종주로는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천왕봉-대원사), 설악산 서북릉 종주(오색-대청봉-남교리), 덕유산 육구종주(육십령-향적봉-구천동)가 남한땅을 대표하는 종주 코스다.

첫 번째 관문 할미봉(1026m)까지는 3.4km. 충영탑 오른쪽 음수대에서 나무 계단을 100m가량 오르면 왼쪽은 남덕유산(8.0㎞), 오른쪽은 무룡고개 방향이다. 백두대간 구간의 주능선이다.

왼쪽으로 꺾어 할미봉 가는 산길은 꾸준한 업힐 구간이다. 빽빽한 솔숲으로 인해 시야는 가리는 반면 숲 그늘이 좋아 일행의 걸음도 시원시원하다. 중간중간 된비알에 암릉 구간이 많아 밧줄을 잡고 계속해서 올라가야 한다. 초반부터 보리알 같은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덕유산 종주 구간중 제법 난이도가 높은 사나운 길이다.

초반 병생이 친구가 몸이 축쳐져 컨디션 가라앉아 보인다. 주전부리성 입담을 잘 던지는 친구인데 간밤의 과음탓일까. 말수도 없고 얼굴도 창백해 보였다. 대열 후미에서 심관이가 보폭을 살피며 조율을 해주었고 병섭이는 준비해온 상비약을, 길현이는 표면에 금박이 입혀진

공진단을 먹여 염려하니 다시 기력을 회복해 가며 뚜벅뚜벅 걷는다.

할미봉에 7시40분 도착했다. 새벽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남쪽으론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조망되며 우측엔 삼형제바위가 보이고 가야 할 남덕유산과 서봉이 병풍처럼 둘러 위엄을 뽑내고 있다.

할미봉을 뒤로 하니 가파른 로프구간과 짜릿한 수직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계단에서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서봉과 남덕유산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킨다. 능선은 거침없이 내달리는 준마처럼 힘차게 뻗어 있다.

할미봉을 내려서면서 능선길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유순하고 순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굴참나무 무성한 그늘 드리워진 구불구불한 길에는 만개한 원츄리꽃들이 노랑색 자태를 곱게도 밀어 올렸다.

숲길은 육십령에서 5.2km 부근 덕유학생교육원으로 갈라지는 삼자봉을 지날 때까지 평탄하게 이어진다. 서봉(1492m)이 가까워지며 너덜지대도 만나고 가팔라진다. 정상이 지척에 있지만 올라가는 마지막 구간에 큰 바위들이 수시로 툭툭 불거져 길 앞을 막아서 숨이 턱턱 막힌다. 이후 한번 급하게 내리막계단을 지나고 서걱서걱한 조릿대 무성한 사잇길을 지나면서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며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흐르는 주능선이 조망된다.

환갑줄에 들어선 나이에 몸의 세포가 작년 다르고 어제와 오늘 또 다르다더니 변화가 체감됐다. ‘우보천리 동행만리’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함께 걷는 친구들도 있고 스스로 나잇살도 다독여 본다.

서봉에 오르는 길이 너무 힘들어 나무늘보처럼 걸었고 사람의 체온을 넘나드는 폭염으로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할 즈음 사방으로 조망이 터지는 멋진 전망대인 서봉(1492m) 정상에 섰다. 사위가 탁 트여 일망무제의 조망은 가슴까지 시원해지고 끝없이 겹쳐진 산그리메가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남덕유산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봉이라 부르지만 백두대간에 우뚝 솟아 장수덕유산이라고 불리는 높은 봉우리다.

곧바로 남덕유산으로 향했다. 갈 길이 멀어 지체할 수 없었다. 멀리 북동쪽으로 보이는 삿갓봉(1419m)을 넘어야 목적지인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리쬐는 불볕더위로 녹초가 됐다. 배낭에 식수를 넉넉하게 넣었었지만 초반 갈증에 물이 바닥나 갈증의 강도는 높아져만 갔고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목에 들어가는 물 한 목음이 이렇게 귀할 줄이야.

서봉에서 0.8km 내려와 안부에 닿으면 월성재와 삿갓봉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0.3km 격하게 올라야 하는 된비알 오름 구간으로 진이 빠지는 악명을 떨치는 길.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며 땀이 후줄근하다. 넓은 공터가 있는 삼거리에 배낭을 벗어두고 남덕유산(1507m) 정상을 올랐다.

긴 내리막길에서는 다리가 후둘거린다. 내리막계단이 끝날 무렵 산길에 허기져 주먹밥을 입에 넣느라 바쁘다. 점심을 달게 먹고 제법 긴 휴식을 취하니 그나마 목마름으로 말라가던 목줄에 새로운 기운이 돌고 원기가 회복되는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에 배인 땀을 씻어준다.

월성재(1240m)까지는 약 1km. 월성재는 장수군과 거창군을 이어주는 고개다. 멀리 가야산 준봉이 바라 보인다. 월성재에서 삿갓봉(1418.6m) 까지는 2.1km. 삿갓봉은 말 그대로 김삿갓이 눌러쓰던 삿갓처럼 원뿔 모양의 봉우리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삿갓봉을 지났다. 월성재 지나 삿갓봉까지 참 멀게 느껴졌다.

지나온 남덕유산과 서봉이 우뚝하고 지리산 연봉이 조망되며 가야 할 무룡산에서 중봉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육중하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삿갓재대피소가 지근거리에 있지만 힘들고 배가 고파 다리가 후들거린다.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산행시작 9시간30분이 소요됐다.

친구들과 함께 재빨리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초벌한 삼겹살을 구워 묵은지볶음에 살짝 얹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우리는 굽히는 족족 맛나게 삼키면서 라면도 서너개 끓어 뚝딱 해치우고 길었던 하루의 피곤을 쓰다듬으며 소주 몇 잔을 달게 넘기고 단잠에 들었다.

산행 2일차 새벽 4시30분. 서둘러 무룡산(1492m)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지가 뻑적지근하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무룡산까지는 2.1㎞, 시간상으로는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깜깜한 새벽 헤드렌턴 빛으로 우리 일행은 무덤덤하게 보폭을 맞추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나아간다. 성하의 무성한 이슬이 맺힌 나뭇잎이 스쳐지는 좁은 산길이 이어지다가 어느새 시야가 툭 터진다.

무룡산 오르기 전 데크계단 끝 부근에서 멀리 수평선에 여명의 띠를 두르기 시작했고 붉은해가 솟아오른다. 덕유산의 장엄한 일출을 만나는 순간이다. 청량한 기운이 스며들며 잔잔한 감동을 불러온다. 너무나 아름다워 친구들은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삼라만상이 깨어나는 덕유산의 기운을 받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덕유산 특유의 넓고 시원한 능선이 끝없이 펼쳐졌다.

용이 춤추는 무룡산을 내려와 백두대간 길은 동업령까지 평탄하다. 동업령에 닿으면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칠연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되며 약 2km 전방에 칠이남쪽대기봉(가림봉)을 지나 백암봉근처까진 완만하게 올라간다.

백암봉 정상 직전에 계단 오르막 경사가 꽤 심하며 길고 지루한 오름길 끝에 백암봉(1,480m) 정상으로 올라선다. 겹겹으로 중첩되는 산 능선이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경이로운 풍경이다.

가야 할 중봉 향적봉 덕유평전이 한눈에 들어오며 무엇 때문에 덕유산이 품넓은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지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 장쾌함을 어디에 비하랴.

중봉으로 오르는 길은 차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지난하고 끝이 없는 오늘 산행의 최대 난코스, 마지막 사활을 건 사투 같은 길이었다. 어제 후미 대열에서 걷던 심관이와 병생이가 쭉쭉 치고 오른다. 나는 다리가 천근같이 무거워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비탈진 산길에 금빛 노란 원추리꽃이 새벽별처럼 반짝이며 피어나 섣불리 범접할 수 없을 듯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며 지친 길손을 반겨주고 있었다.

중봉(1594m)에 올랐다. 중봉에서는 안개가 산을 지웠다가 순식간에 걷히기를 반복하며 운치를 더한다. 중봉에서 내려다보는, 시야가 가장 넓게 열린 덕유평전이 펼쳐졌다. 평평한 야생의 꽃밭은 천상의 화원이며 무위자연의 야생화들이 지친 산객에게 미소를 보낸다.

바로 눈앞에 덕유산의 최고봉 향적봉(1614m)이 우뚝하다. 정상에 섰다가 내려가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가야 할 마지막 봉우리란 안도감이 뒤섞였다. 향적봉 바로 아래 대피소 들어가 먹다 남긴 삼겹살과 라면을 끓여 고픈 배를 채우고 향적봉 정상에 올랐다. 감격에 겨웠다. 정상석 아래엔 인증사진을 찍을려고 긴 대기 줄이 있었다. 우리 일행도 기념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하산길에 올랐다.

백련사를 거쳐 구천동 계곡에 들어오니 피서객으로 가득차 시끌벅적하다. 등을 짓누르던 달팽이 같던 등짐을 내려놓고 송어회에 쏘맥을 말아 승리자의 뒷풀이를 하며 태어나 가장 힘들게 걸었던 육구종주 토크가 이어졌다.

장장 24시간(휴식시간 포함) 숨막히는 더위와 통증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무엇을 위해 쏟은 땀인가.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덕유산에 흘린 땀이 고귀하게 느껴진다. 그냥 거기까지다. 나란히 동행해준 네 친구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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