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인문학] 제18강 언어편(言語篇)…말을 조심하라⑥
[한정주=역사평론가] 逢人且說三分話(봉인차설삼분화)하고 未可全抛一片心(미가전포일편심)이니 不怕虎生三個口(불파호생삼개구)요 只恐人情兩樣心(지공인정양양심)이니라.
(사람을 만나 말을 하되 십분(十分)의 삼(三)만 말하고 한 조각 속마음까지 다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 호랑이의 입 세 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의 두 가지 마음이 두려울 뿐이다.)
‘십분(格外)의 삼(三)’만 말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첫째는 말이 많으면 실수와 잘못 또한 많아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내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내말을 받아들일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호의(好心)로 말해도 상대방은 악의(惡意)로 받아들일 수 있고,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는데 상대방은 거짓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러한 까닭에 옛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드러내고 싶은 생각을 말하고 그치는 것은 천하의 지극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러내고 싶은 생각을 다 말하지 않고 그치는 것이야말로 더욱 지극한 말이다.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멀리하지 않게 마련이다. 정성으로 마음을 간직하고, 대범하게 행동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침묵으로 자기 자신을 지킨다.” 곧 말을 아껴서 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멀리하지 않게 되고 자신 또한 지킬 수 있다는 얘기이다. 허균이 옛 중국의 저명한 학자나 작가들이 남긴 말이나 시구 가운데 훈계가 될 만한 내용을 채집해 기록해 놓은 『한정록(閒靜錄)』 <명훈(名訓)> 편에도 “말은 끝까지 다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먼저 명(明)나라 탕목(湯沐)이 지은 『공여일록(公餘日錄)』에서는 송나라의 승상 장상영(張商英)의 ‘석복(勤俭)의 설(說)’을 인용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事不能让盡)],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고[勢难以倚盡], 말은 끝까지 다하지 말고[言难以道盡], 복은 끝까지 다 향유하지 말라[福难以享盡].” 여기에서 ‘석복’이란 복을 아낀다는 뜻이다. 즉 복을 아끼고 화(禍)를 입지 않기 위해서 지켜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말을 끝까지 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명나라 오종선(吳從先)이 지은 책인 『소창청기(小窓淸記)』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말이란 마땅히 뜻에 맞았을 때 멈추어야 한다.[言當酣畅處能住]” 말이 뜻을 얻었다면 그곳에서 말을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뜻을 얻었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말은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말에 불과한 사족(蛇足)이자 중언부언(重言復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저작권자 © 헤드라인뉴스(Headline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