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산행을 주왕산(722m)으로 계획하고 깜깜한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먼길 가는 애마에 기름을 가득 넣고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으며 목적지로 향한다.
고속도로엔 구간별로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있다. 방향이 흐릿해 속도를 늦춘 바람에 예정보다 30분 늦은 아침 6시30분에 주왕산국립공원 상의주차장에 닿을 수 있었다. 서울 톨게이트 진입 후 3시간30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청송은 깊숙한 산간오지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주차장에서 상가지구를 지나 들머리 대전사까지는 약 10분이 소요된다. 이른 새벽 절집은 고요하고 깨끗하게 비질이 되어 청결하다. 절 마당 한 켠 은행나무에는 노랗게 물든 가을이 주렁주렁하고 둥치가 굵은 아름드리 고목의 잎에도 고운 단풍이 내려앉아 있다.
대전사 뒷편에 솟아있는 우람한 기암의 위용이 시야를 압도하고 천년고찰과 다홍의 단풍이 연출하는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주왕산 주봉코스 산행은 상의주차장~대전사~주왕산(주봉)~칼등고개~후리메기~용추폭포~상의주차장 10km로 4시간30분이 예상되며 주왕산 산행별 7코스 중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대전사에서 주봉(726m)까지 2.3km이며 초입부터 경사가 급한 된비알이지만 정비가 잘되어 있는 데크 계단길이다. 1km 정도 오르면 첫 번째 전망데크가 나오고 이어 편안한 흙길과 돌길로 바뀌며 얼마지 않아 두 번째 전망데크에 도착한다.
산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뷰 포인트로 깎아지른 듯한 암봉과 협곡이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바위와 어우러진 오색단풍 향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비로소 주왕산이 설악산·월출산과 더불어 3대 암산이고 경북 제일의 명산인지 실감되는 순간이다.
감동적인 풍경에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다시 주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능선길이 펼쳐지며 세 번째 전망데크를 만난다. 해발 고도가 높아진 탓에 더욱 웅대한 경관이 파노라마로 조망되며 오가는 길손들에게 수려한 비경을 선사한다.
땀이 좀 밸 무렵 가파른 산길은 주봉 내어주지만 776m 정상의 조망은 없고 잡목에 둘러싸인 넓다란 마당에 정상석만 우두커니 서 있다. 산행 시작 1시간 만이다.
칼등고개로 하산길은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내리막 계단길이 연속되고 이 구간은 울창한 솔숲 길이 펼쳐진다. 후리메기 삼거리에서 칼등고개 능선길은 끝나며 주봉에서 2.5km 내려선 지점이고 날머리 대전사까지는 4.1km 남는 지점이다.
후리메기 삼거리에서 후리메기 입구까지는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길이고 다리를 몇 번 건넌다. 길은 순하며 청량한 소나무숲과 오색단풍, 낙엽의 조화로움에 온 전신이 붉게 달아오르고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주왕산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 꼽으라면 단연 주방천 계곡길이다.
주방천 계곡에는 용연폭포, 절구폭포, 용추폭포 세 곳의 폭포가 있는데 쉴 사이 없이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가 경쾌하다. 주 탐방로에서 0.3km 들어가 있는 용연폭포는 그중 제일 큰 폭포이며 못의 바위면에 세 개의 굴이 움푹 패여 신비스럽다.
다시 탐방로로 들어서 절구통을 닮아 붙여진 절구폭포를 보고 산책로 같은 평평한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 거대한 협곡이 시작된다.
이 거대한 바위 골짜기가 용추협곡이다. 협곡 바위벽의 높이가 까마득하며 겹겹이 늘어서 경사는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다. 석벽사이로 맑고 힘차게 쏟아지는 용추폭포의 비경에 연신 단풍객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왁자한 풍경을 쏟아내고 있다.
주왕산의 백미로 꼽히는 학소대, 급수대, 시루봉 등 기암괴석의 암릉미를 감상하며 여유롭게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 사이에 목적지 대전사에 이른다.
주왕이 중국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키다 머나먼 이 산까지 피신을 왔다는 전설이 서린 주왕산. 시선이 멈추는 곳곳이 명승이고 기묘한 매력이 넘친다.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대전사 경내에도 노을이 내린다.
주왕산 산행을 마치고 주산지로 차를 몰았다. 주산지의 파수꾼 왕버들은 수령 150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병풍처럼 둘러싼 산과 물에 잠긴 왕버들 그리고 안개가 피어나는 새벽녘 몽환적 풍경은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는 신비의 저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