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곧장 왜놈의 기세만 꺾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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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곧장 왜놈의 기세만 꺾고 싶을 뿐”
  • 한정곤 기자
  • 승인 2024.05.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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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弓詩] 조선 선비, 활쏘기를 노래하다…⑦觀射革有感

才妙穿楊手 버들잎을 뚫던 절묘한 활 솜씨로
强彎落月弓 달을 떨어뜨릴 만한 활을 당기어라
驚懽聽鼓續 놀라고 환호함에 북소리는 둥둥 이어지고
賞罰怕籌同 상벌을 시행함에 벌주는 쌓일까 두렵구나
赳赳干城將 굳세고 굳셈은 간성 같은 장수요
揚揚矍鑠翁 의기양양함은 확삭하던 늙은이 같네
書生不觀德 이 서생은 덕행을 보자는 게 아니요
直欲折倭鋒 곧장 왜놈의 기세만 꺾고 싶을 뿐이라네. (『소재집』 제3권)

조선시대 활쏘기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예기(禮記)』 「사의(射義)」 편에서 언급하는 관덕(觀德), 즉 ‘덕행을 보는 것’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무기로서의 기능으로, 즉 목표물에 화살을 관중시키는 것이다.  전자가 문관(文官)들의 활쏘기라면 후자는 무관(武官)들의 활쏘기다.

조선 전기의 학자인 노수신(盧守愼·1515년(중종 10년)~1590년(선조 23년))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나이 일흔의 배세량(裵世良)이라는 노인의 활쏘기를 보고 이 시를 썼다. 당시 진도에서는 만호(萬戶) 김수생(金水生)이 활을 잘 쏘았는데 배세량의 활 솜씨가 김수생과 필적할 만했다.

그러나 문신이었던 노수신의 눈에 덕행을 보는 활쏘기와 달리 배세량의 활쏘기에서 강렬하고 호쾌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듯하다.

제목은 <화살로 과녁을 쏘는 것을 구경하고 느낌이 있어 읊다(觀射革有感)>다.

이 시를 쓴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다. 다만 노수신이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돼 탄핵을 받고 진도에서 귀양을 살다 1567년 풀려났던 점을 고려할 때 귀양에서 풀려나기 몇 해 전으로 추정된다. 특히 노수신의 사망 연도가 1590년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 전이라는 점에서 ‘왜놈의 기세만 꺾고 싶을 뿐’이라는 표현은 임진왜란을 가리키기보다는 진도 등 남해안에 자주 출몰해 노략질을 일삼았던 왜구들과의 전투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배세량의 활 솜씨를 견준 만호 김수생(?~1597년)은 진도읍 매향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택군수를 지낸 김인경(金仁慶)이다. 종6품인 훈련원 주부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 참전해 대승을 이끌었지만 전사했다. 이후 병조참의에 추증됐으며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충무사에 배향됐다. 전주이씨와의 사이에 아들 김름(金澟)을 두었고 김름은 음직으로 삼화부사(三和府使)를 지냈다. 후손들은 해남으로 옮겼기 때문에 진도에는 후손들이 없다.

시에서 ‘버들잎을 뚫던 절묘한 활 솜씨’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대부(大夫) 양유기(養由基)가 활을 매우 잘 쏘아 100보(步) 밖에서 버들잎을 쏘아 백발백중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만호 김수생과 배세량의 활 솜씨를 양유기에 빗대어 감탄한 말이다.

‘달을 떨어뜨릴 만한 활을 당기어라’는 이백(李白)의 시 <대렵부(大獵賦)>에 “이에 하늘가 닿을 듯한 긴 칼을 뽑아 들고 달을 떨어뜨릴 만한 강한 활을 당기도다(于是擢倚天之劍 彎落月之弓)”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놀라고 환호함에 북소리는 둥둥 이어지고’는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힐 때마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북을 둥둥 울리는 모습을 묘사했다.

‘상벌을 시행함에 벌주는 쌓일까 두렵구나’는 벌주(罰籌)는 벌주(罰酒) 잔을 세는 산가지를 말한 것으로, 즉 활쏘기에서 이긴 자에게는 상을 주고 진 자에게는 벌주를 마시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굳세고 굳셈은 간성 같은 장수요‘는 『시경(詩經)』 「주남(周南」 ‘토저(兎罝)’에 “굳세고 굳센 무부여, 공후의 간성이로다(赳赳武夫 公侯干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만호 김수생을 빗대서 한 말이다.

의기양양함은 확삭하던 늙은이 같네‘는 확삭(矍鑠)은 용맹이 있는 모양을 형용한 말로 후한(後漢)의 명장 마원(馬援)이 62세의 노령(老齡)으로 다시 전쟁에 나가려고 했지만 임금이 그의 연로함을 안타깝게 여겨 윤허하지 않아 마원이 짐짓 몸소 갑옷을 입고 말안장에 올라앉아 이리저리 돌아보며 몸을 가볍게 놀려 아직도 쓸 만하다는 것을 보이자 임금이 이르기를 “확삭하도다, 이 늙은이여(矍鑠哉, 是翁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진도의 향인으로 당시 활을 잘 쏘았던 배세량을 후한의 마원에 빗대고 있다.

’이 서생은 덕행을 보자는 게 아니요‘는 『예기』 「사의」에 “활 쏘는 것은 진퇴와 주선함이 반드시 예에 맞게 하나니 속의 뜻이 바르고 겉의 몸이 곧은 다음에야 궁시를 잡는 것이 세밀하고 견고해지며 궁시를 잡는 것이 세밀하고 견고한 다음에야 맞히는 것을 말할 수 있으니, 이는 곧 덕행을 볼 수 있는 것이다(射者 進退周旋 必中禮 內志正 外體直 然後持弓矢審固 持弓矢審固 然後可以言中 此可以觀德行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배세량의 활쏘기가 문신들처럼 덕행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왜놈을 물리치는 것만을 생각할 뿐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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