粉鵠高懸返照明 높이 매단 흰 과녁은 햇볕을 되쏘고
渚淸沙遠柳陰輕 맑은 물가 모래톱엔 버들잎 날리누나
盛時豈欲誇奇藝 성세(盛世)에 무예를 뽐내려 함이랴
暇日聊謀樂太平 여가에 태평을 즐기는 것일 뿐
白羽星流山影動 흰 깃 쌔앵 날아가면 산 그림자 흔들리고
紅心雹落水紋生 붉은 정곡 적중하면 물결무늬 일어나네
如今漫浪觀猶壯 한가로이 활을 쏘는 지금도 장관인데
何況當年矍圃情 하물며 공자님이 향사례(鄕射禮)를 하실 제랴. (『무명자집 시고』 제1책)
서울 여의도 밤섬의 모래사장에서 활잡이들이 한가로이 활을 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햇볕이 반사되는 곳에 설치된 과녁과 모래사장 주변으로 잎이 흩날리는 버드나무의 풍경은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성세에 굳이 무예를 익힌다기보다는 물가 활터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여유로움을 더해준다.
그러나 유성처럼 빨리 날아가는 화살은 마치 물 위에 배가 지나가듯 물이 일렁이는 것과 같고 과녁에 꽂힌 화살은 물결이 퍼지듯 파동을 일으킨다는 굳센 기상이 담겨있다.
이처럼 맑은 날 한가로운 활쏘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인데 공자가 확상에서 거행했던 향사례는 얼마나 대단했겠느냐는 감탄을 담고 있다.
이 시는 스스로를 무명자(無名子)로 불렀던 조선 후기의 문신 윤기(尹愭·1741~1826년)의 나이 25세 때인 1765년(영조 41년) 탁영정(濯纓亭)에 우거할 때의 작품이다. 제목은 <작은 배를 타고 밤섬의 모래사장에 가서 활쏘기를 구경하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乘小舸 往栗島沙塲 觀射侯 口占)>이다.
1773년(영조 43년)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20여년간 학문을 연구했던 그는 『정조실록』 편찬관을 역임했고 호조참의를 지냈다. 20권 20책에 달하는 그의 저서 『무명자집(無名子集)』은 다양한 소재와 내용을 담은 방대한 분량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문학적 역량은 물론 역사·풍속·생활·제도 등에 대한 내용이 많아 역사적 고증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직접 활쏘기를 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지만 활터를 소재로 한 시가 많아 당시 활터 연구에 큰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밤섬의 활터는 어떤 자료에서도 거론되지 않는다. 밤섬은 현재의 서울시 영등포구 서강대교 아래 한강에 있는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1000여명의 주민들이 고깃배 수리·제작과 누에를 치고 약초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었다고 전해진다.
1960대 말까지도 78가구 443명의 주민이 살았지만 1968년 여의도 제방공사에 부족했던 토사를 공급할 목적으로 섬을 폭파하고 주민들은 마포 창천동 와우산 기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밤섬의 둘레가 8000보라고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