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張射幕樹陰淸 청량한 그늘 속 높직이 펼쳐진 활터에
箭帶長風箇箇輕 긴 바람 타고서 화살 씽씽 나는구나
席上紅娥分隊立 자리한 미인들 정렬하여 서서는
一時呼中鼓齊鳴 북소리와 동시에 명중이라 합창하네. (『미호집』 제1권)
강원도 원주시에 있던 구석정(龜石亭)에서 활쏘기를 구경하며 쓴 시다.
우거진 숲속 높직한 그늘에 자리한 사대에서 활쏘기를 하는 활잡이들의 모습과 바람을 타고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관중하자 줄지어 선 미인들이 북소리에 맞춰 관중을 외치는 한가로움을 노래했다.
구석정은 원주시 봉천(봉산동) 당간지주 앞쪽에 있던 활터로 알려지지만 지금은 봉천 제방 속에 묻혀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원주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단구잡록(丹丘雜錄)』에 저자와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남곽(南郭) 어르신을 모시고 구석정(龜石亭)을 유람하며>란 제목의 시가 전해져 당시 활터의 풍광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다.
시절에 알맞은 비가 가볍게 내려 석양을 가렸는데
소당(小堂)에서 고아한 만남 갖고 돌아갈 일도 잊었네.
봉황이 깃든 개울에는 햇살 아름다워 견줄 것이 없고
학이 사는 고을에는 차향(茶香)이 아름다우니 참으로 드문 모습이라.
봉우리 그림자 위태롭게 솟아 있고 인영(人影)은 땅에 드리우는데
바둑돌 소리 청아하고 새 날아가는 소리도 귓가에 들려온다.
이곳에서의 풍류를 헛되이 보낼 수 없으니
훗날 지팡이 짚고 함께 오자는 약속 저버리지 마시길.
햇살 내리쬐는 개울이 흐르고 높은 산봉우리 그림자가 드리우는 활터에 바둑 두는 소리와 새소리 울려 퍼지는 신선이 노닐 듯한 자연환경이 떠오른다.
‘북소리와 동시에 명중이라 합창하는 미인들’은 기생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활쏘기는 음악과 함께 했다. 임금의 활쏘기인 예사, 궁중연사, 대사례는 물론 서울과 지방의 각종 편사에서도 음악이 연주됐다. 획창(獲唱)이다.
서울지역에서 행해진 장안편사에서는 1960년대까지 행해졌고 현재 인천 지역의 편사에서 그 흔적이 전해지고 있다.
스튜어트 컬린은 『조선의 놀이』에서 획창에 대해 “때론 기생 넷이 각기 과녁 옆에 지켜서서 보고 있다가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면 쏜 사람의 이름을 대며 구성지게 창을 한다”고 서술했다.
이 시를 쓴 김원행(金元行·1702년(숙종 28)∼1772년(영조 48))은 조선 후기의 집권 계층인 노론 가문의 후손으로 학통을 잇는 존재가 되어 조야(朝野)에 큰 영향력을 미친 학자다.
1719년(숙종 45) 진사가 됐지만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조부 김창집(金昌集)이 노론 4대신으로 사사되고 생부 김제겸과 친형 김성행(金省行)·김탄행(金坦行) 등이 유배돼 죽임을 당하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했다. 1725년(영조 1) 조부·생부·형 등이 신원된 후에도 시골에 묻혀 살며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는 나라에서 정통 학자로 추대됐 산림의 지위에 있었던 그의 문하에서는 수많은 순수 성리학자들이 배출됐고 또한 몇 사람의 실학자도 일부 배출됐다. 그의 학통을 이은 제자로는 아들 이안(履安)과 박윤원(朴胤源)·오윤상(吳允常)·홍대용(洪大容)·황윤석(黃胤錫) 등이 있다. 저서로는 『미호집(渼湖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