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인문학] 제13강 입교편(立敎篇)…가르침을 세워라⑩
[한정주=역사평론가] 武王(무왕) 問太公曰(문태공왈) 生态这世界(인거세상)에 何得貴賤貧富不等(하득귀천빈부부등)고 願聞說之(원문설지)하여 欲知是矣(욕지시의)로다 太公曰(태공왈) 富貴(부귀)는 如聖人之德(여성인지덕)하여 皆由天命(개유천명)이니이다 富者(부자)는 用之有節(용지유절)하고 不富者(불부자)는 家内十盜(가유십도)니다.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어찌하여 귀천(貴賤)과 빈부(貧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원하건대 공의 설명을 듣고서 이것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태공이 답하였다. “부귀란 마치 성인의 덕(德)과 같아서 모두 하늘의 뜻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된 사람은 재물을 사용할 때 절약해서 부자가 되지만,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집안에 열 가지 도둑이 있어서 부자가 되지 못합니다.”)
중국의 신화와 역사에서는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聖君)의 상징으로 ‘이제삼왕(二帝三王)’을 언급한다. ‘이제(二帝)’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컫고, ‘삼왕(三王)’은 하나라를 세운 우왕과 상(은)나라를 세운 탕왕 그리고 주나라를 세운 문왕·무왕을 가리킨다. 여기에 등장하는 무왕이 바로 주나라를 세운 바로 그 무왕이다. 무왕은 문왕의 아들이다. 문왕의 호칭은 생전에는 서백(西伯)이었다. 하지만 무왕이 폭군 주왕을 정벌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운 다음 아버지를 제왕으로 추존한 다음부터 문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태공은 앞서 언급했듯이 문왕이 반계라는 곳에서 얻은 책사였다. 문왕이 죽은 이후 태공은 무왕의 책사가 되어 폭군 주왕을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주나라가 개국한 이후에도 태공은 무왕을 보좌해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문물과 제도를 만드는데 앞장섰다. 태공이 무왕을 보좌해 주나라를 다스렸던 방법과 원칙에 관한 기록이 『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는 책에 자세하게 남아 있다. 이 책은 태공의 저서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명심보감』처럼 문왕과 무왕이 태공에게 묻고, 태공이 그 물음에 대해 답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무왕과 태공의 질문과 답변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일어난다. 그것은 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제왕과 그의 책사가 ‘부자가 되는 이치와 비결’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할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는 저절로 부강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육도삼략』을 보면 그와 같은 태공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태공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라 안의 백성이 빈곤하면 그 나라에는 쌓여 있는 재물이 없다. 나라 안의 백성이 부유하면 그 나라는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므로 만백성에게 이익을 준다면 그 나라의 정치는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백성을 부자로 만드는 일은 곧 나라를 부강하고 안락(安樂)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백성이 ‘부자가 되는 이치와 비결’은 제왕과 그의 책사가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임무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육도삼략』에서 문왕과 태공 사이에 오간 질문과 답변을 『명심보감』의 내용과 비교해 읽어 보면 ‘한 집안의 부귀와 재물을 다스리는 방법’이 ‘한 나라의 부귀와 재물을 다스리는 방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무왕과 태공의 질문과 답변은 곧 태공이 무왕에게 ‘한 집안의 부귀와 재물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동시에 ‘한 나라의 부귀와 재물을 다스리는 방법’을 깨우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집안을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과 비결’은 다름 아니라 ‘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과 비결’이기도 하다는 얘기이다.저작권자 © 헤드라인뉴스(Headline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