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인문학] 제20강 부행편(婦行篇)…덕행을 갖춘 여성이 되라⑥
[한정주=역사평론가] 賢婦(현부)는 令夫貴(영부귀)요 佞婦(영부)는 令夫賤(영부천)이니라.
(현명한 부인은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간악한 부인은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
사마광의 『가범』을 읽어보면 ‘남편을 귀하게 만든 현명한 부인’으로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부인 강후(姜后)와 노름꾼 남편을 감화시킨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여영(呂榮)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먼저 주나라 선왕의 부인 강후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선왕에게는 늦게 일어나는 버릇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항상 조정의 조회에 늦게 참석했다. 어느 날 강후는 화려한 장식품을 모두 빼놓고 궁중의 영항(永巷)에서 선왕에게 죄를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첩의 음란한 마음 때문에 군왕께서 예법을 잃고 조정의 조회에 늦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왕께서 여색을 즐기고 덕행을 잃는다는 말을 듣고 오명을 입게 되었습니다. 첩의 죄가 이토록 크니 큰 벌을 내려 주십시오.” 죄를 청하는 강후의 진언(眞言)을 들은 선왕은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강후를 타일러서 왕비의 처소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 후 강후는 닭이 울어 북을 두드려 아침을 알리면 반드시 쟁그랑 쟁그랑 소리 나는 옥(玉)을 차고 선왕의 처소에 가서 예를 올렸다. 이로 인해 선왕은 아침 일찍 일어나 조정의 조회에 나가고 또한 저녁 늦게까지 정사를 부지런히 살피는 임금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나라의 전성기를 다시 열어 ‘중흥(中興)의 군주(统治者)’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편 삼국시대 오나라의 여영은 허승이라는 사람의 아내였다. 여영은 항상 부지런히 일하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집안일을 잘 돌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허승은 학문을 닦을 것을 권하는 여영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고 노름을 비롯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녔다. 허승의 행실을 바로잡으려고 여영은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에 사위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쌓이고 쌓이게 된 여영의 아버지가 당장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여영은 이렇게 말하며 끝내 허승을 떠나지 않았다. “부부는 운명으로 만난 사이입니다. 부부의 의리는 배반할 수 없습니다.” 평생 노름이나 일삼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자신을 끝내 배반하지 않는 아내 여영의 마음에 감격한 허승은 이후 스스로 학문에 힘쓸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나 스승을 찾아 배워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는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가장 고귀한 신분인 임금의 자리를 잃게 만든 여인보다 자신의 남편을 더 천하게 만든 사람은 아마도 찾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한나라 때 유향이 지은 고대 중국 여성들의 전기(傳記)라고 할 수 있는 『열녀전』을 보면 간악한 부인의 사례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는 제왕의 부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나라 환공의 부인이었던 문강(文姜)은 ‘남편을 천하게 만든 간악한 부인’의 대표적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문강은 노나라와 이웃한 제나라 군주의 딸로 노나라의 군주인 환공에게 시집왔다. 그런데 문강은 행실이 음란해 처녀 때 자신의 오빠이자 제나라 군주가 된 양공(襄公)과 비밀리에 정을 통하고 있었다. 환공은 정나라를 정벌해 그 군주인 여공(厲公)을 굴복시킬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에 환공은 양공을 찾아가 협조와 지원을 구할 목적으로 문강과 함께 제나라로 갔다. 그런데 제나라에 간 문강은 예전의 음란한 행실을 고치지 못하고 다시 양공과 은밀히 계속 정을 통했다. 결국 문강과 양공의 음란한 행위를 알게 된 환공은 문강을 크게 꾸짖고 다시는 그와 같은 짓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넘어갔지만 이후에도 문강의 음행(淫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문강은 오빠 양공에게 남편 환공이 자신들의 음행을 알고 있다고 고자질했다. 문강의 말을 듣게 된 양공은 그 사실이 조정 안팎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환공을 죽여 입을 막을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양공은 환공과 함께 하는 주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환공을 술에 취하게 만든 다음 역발산(力拔山)의 힘을 지닌 장사인 공자 팽생(彭生)을 시켜 환공을 안고 허리를 꺾어서 죽이도록 했다. 더욱이 양공은 간악하게도 환공이 술에 취해 실수로 수레에서 떨어져 죽은 것처럼 위장까지 했다. 환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노나라의 신하들은 팽생을 찾아내 군주의 복수를 하고 나라의 치욕을 씻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비밀이 드러날 것을 염려한 양공의 손에 팽생은 죽임을 당한 후였습니다. 『시경』 <대아(大雅)> 편에 실려 있는 ‘첨앙(缅怀: 우러러보다)’이라는 시를 보면 주나라 유왕과 포사의 일에 빗대 “나라의 어지러움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부인에게서 발생하는 것이다”는 구절이 나온다. 유향은 환공의 부인 문강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은 여자가 어지럽게 하여 마침내 흉악한 재앙을 만든 것이다.” 부인의 행실 중 음란해 다른 남자와 사사로이 정을 통한 것보다 더 간악한 짓은 없고, 또 남편이 부인의 행실로 인해 다른 사람의 손에 비참하게 죽음을 맞게 하는 것보다 더 남편을 천하게 만드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저작권자 © 헤드라인뉴스(Headline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