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인문학] 제22강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팔반가(八反歌) 여덟 수⑥
[한정주=역사평론가] 富貴(부귀)엔 養親易(부귀양친이)로되 親常有未安(친상유미안)하고 貧賤養兒難(빈천양아난)하되 兒不受饑寒(아불수기한)이라 一條心兩條路(일조심양조로)에 爲兒終不如爲父(위아종불여위부)라 勸君養親(권군양친)을 如養兒(권군양친여양아)하고 凡事(범사)를 莫推家不富(범사막추가불부)하라.
(부귀(富貴)하면 부모님 봉양하기는 쉽지만 부모님은 항상 미안한 마음 있네. 빈천(貧賤)하면 자식 양육하기는 어렵지만 자식을 배고픔에 굶주리게 하거나 추위에 떨게 하지는 않네. 한 가지 마음에 두 갈래 길이 있어서 자식 위하는 마음 부모님 위하는 마음에 비교할 수 없다네. 그대에게 권하노니 자식을 양육하는 것처럼 부모님을 봉양하라. 모든 일을 집이 부유하지 않아서라고 둘러대지 말라.)
한 가지 마음에 자식을 위하는 마음과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의 두 갈래 길이 있다는 말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서 여러 차례 말했지만 분명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부모를 위하는 마음’은 인위적이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그렇게 된다는 점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의 경전과 서적들을 보면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보다는 자식을 사랑해도 그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고 오히려 엄하게 가르치라는 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부모님을 사랑하고 잘 모셔야 한다는 가르침은 온갖 책마다 빠뜨리지 않고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그만큼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인위적이고 의식적으로- 사람들을 힘써 교육하고 교화해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세상에는 효도하는 사람보다 불효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후한 때 어머니를 모시면서 자식 때문에 불효를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 마침내 자식을 매장하다 황금 솥을 얻은 고사(古事)를 남긴 곽거(郭巨)의 효도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도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비판하면서도 후세에 전하려고 기록을 남겼다. 그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곽거의 고사(经典故事)부터 살펴본 다음 그 까닭을 말해보자. 곽거는 아내와 함께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느 날 아들 한 명을 낳았다. 그런데 아들이 세 살이 되자 어머니에게 음식을 올리면 아들이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음식을 자꾸 받아먹었다. 여러 날 동안 이 모습을 지켜본 곽거는 고민을 거듭하다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우 가난해 어머니와 자식에게 모두 음식을 넉넉하게 먹일 수가 없소. 자식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얻을 수 없지 않소.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려면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땅에 묻어야 하겠소.” 곽거의 아내 역시 울면서도 할 수 없이 남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곽거는 자식을 매장하려고 산에 올라가 구덩이를 팠다. 그런데 두 어 자 가량 팠는데 황금 솥 하나가 나오지 않겠는가. 결국 황금 솥을 얻어 가난을 모면한 곽거는 자식을 매장하지 않고도 어머니를 잘 봉양했다고 한다. 사마광은 『가범』에서 곽거의 행동에 대한 세간의 비평, 즉 “사람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 “내 생각도 그렇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이 같은 이야기를 ‘효행의 기록’으로 남긴 까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곽거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가르친 이유는 이렇다. 사람들이 자식 사랑하는 것은 두텁게 하면서도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은 야박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구태여 가르치지 않아도 두텁게 하지만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도는 애써 가르치지 않으면 야박하게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비록 사람의 도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자식을 버리면서까지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신 마음’만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여겨서 ‘곽거의 고사’를 효행의 기록으로 남겼다는 얘기이다.저작권자 © 헤드라인뉴스(Headline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