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기운 하늘 잇닿아 어두운데 雨氣連天暗
구름 빛 해를 내뱉어 밝구나 雲光漏日明
어찌하여 저 비와 저 구름 如何雲與雨
한 가지 심정이 아닌가 不是一般情
『영처시고 1』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는 묻는다. “도대체 시는 어떻게 짓는 것일까?” 이덕무는 답한다. “성령 곧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어떤 사물을 빌려 표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주인공은 사물이 아니다. 성령, 곧 자신의 감정과 생각 혹은 뜻과 기운이 주인공이다.
여기 비와 구름을 묘사하는 시를 예로 들어보자. 겉보기에는 비와 구름이 주인공 같지만 실제 주인공은 비와 구름을 빌려 표현하는 이덕무의 감정과 생각이 주인공이다. 그 감정과 생각이란 무엇인가? 세상사와 나의 뜻을 맞추려고 해도 마치 비와 구름처럼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 세상사와 나의 뜻을 비와 구름에 가탁(假託)해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시다.
이덕무는 말한다. “성령, 곧 자신의 감정과 생각, 뜻과 기운에 바탕 하지 않는 시는 죽은 시요 가짜 시일뿐이다.” 성령을 드러내 묘사한 시만이 참된 시라는 얘기다.
명나라 말기 때 문인 원굉도는 오직 자신의 감정과 생각 혹은 뜻과 기운 곧 성령을 표현한 글만이 진문(眞文), 즉 참된 글이라고 역설했다. 독서성령불구격투(獨抒性靈不拘格套), “오직 성령을 드러낼 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이 말은 원굉도의 시 철학이다. 원굉도는 시를 짓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 시문은 대부분 오직 성령을 드러낼 뿐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자기의 가슴속에서 흘러나와 드러낸 것이 아니면 붓을 휘둘러 시문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때때로 심정과 풍경이 제대로 만나 마음속에 깨달아 터득한 것이 있게 되면 눈 깜빡할 짧은 시간 안에 천 마디 말을 마치 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듯이 한달음에 써 내려갔기 때문에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 시문들 가운데는 훌륭한 곳도 있고 또한 결점이 있는 곳도 있다. 훌륭한 곳이야 스스로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또한 결점이 있는 곳도 역시 본연의 색깔이요 독자적으로 창조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결점이 있는 곳을 지극히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른바 훌륭하다고 말하는 곳은 모방하거나 답습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탄스럽게 여긴다.”
이덕무의 시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인 중 한 사람이다. “오직 성령을 드러낼 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원굉도의 시 철학은 이덕무의 시 세계, 즉 진솔한 시, 기이하고 괴이한 시, 날카롭고 새로운 시, 자연스러운 시, 독창적인 시의 탄생에 산파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