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체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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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체념 사이
  • 한정주 기자
  • 승인 2021.06.2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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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74) 어린 딸을 묻고

10월 빈 산 영원히 너 내버리니           十月空山永棄之
땅속엔 젖 없어 너 이제 굶겠구나         地中無乳汝斯饑
인삼으로 애도한들 어찌 돌아오랴        人蔘那挽將歸者
불치병 별 수 없어 의원 원망하지 않네   技竭膏肓不怨醫

<영처시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삶에는 아무리 안타깝고 아프고 슬퍼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체념이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때다.

슬픔과 체념 사이를 떠도는 이덕무의 감정을 읽다 보면 예전 젊은 시절 시인 박기동의 ‘부용산’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병들어 죽은 딸을 묻고 오는 아버지의 아픔과 슬픔이 꽃다운 나이에 병으로 죽은 여동생을 묻고 오는 오빠의 그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부용산 오리 길에 /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 솔밭 사이 사이로 / 회오리바람 타고 /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 너는 가고 말았구나 / 피어나지 못한 채 /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 부용산 봉우리에 /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잃는 슬픔보다 더한 슬픔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구나 피어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면….

하지만 삶은 무상(無常)하고 생명은 유한(有限)한 것.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면 체념보다 더한 위안과 위로가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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