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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朝三暮四)의 우화…운명은 어떻게 구성되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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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朝三暮四)의 우화…운명은 어떻게 구성되어 가는가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4.12.3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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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인문학] 제1장 운명에 대하여⑤

[한정주=고전연구가] 운명은 우연적인 것이고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또한 운명을 만들어가는 힘의 요소, 즉 실체는 무엇인가.

고대 서양의 자연철학에 등장하는 핵심 개념어 가운데 ‘클리나멘(Clinamen)’이라는 용어가 있다. 클리나멘은 ‘어긋남 혹은 틀어짐, 편위 혹은 편차, 경로 이탈 혹은 방향 선회’ 등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글에 등장한다.

이 글에서 루크레티우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에 비유해 원자들의 운동에서 일어나는 경로 이탈과 그로 인한 원자들 사이의 우발적 충돌을 창조의 에너지이자 변화의 동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무게라는 속성 때문에 원자들이 허공을 관통해 아래로 떨어질 때 절대적으로 예견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들에게 그것들은 자신들의 직선 경로로부터 아주 조금, 단지 한순간의 위치 이동이라고 이야기될 수 있는 작은 정도로 틀어진다. 만일 그것들이 직선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원자들은 빗방울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허공을 관통하여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며 일차적 성분들 사이에 어떤 충돌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어떤 타격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자연은 결코 어떤 것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강신주 지음, 『철학 vs 철학』, 오월의 책, 2010. p67 재인용)>

루크레티우스의 ‘클리나멘’이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는 신의 의지로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시대 내내 매장당하다시피 하다가 근대 이후, 특히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 의해 인문학적으로 다시 해석되어 현재에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자연철학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삶이 각자 일정한 방향과 예측가능한 궤도로 움직일 때 만약 전혀 다른 방향과 예측 불가능한 궤도로 움직이는 우발적인(우연한) 존재가 있다면 반드시 ‘삶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우발적(우연한) 충돌은 삶의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성·창조하는 변화의 계기이자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발적인 존재는 ‘타자’가 되고 삶의 충돌은 ‘사건’이 된다. 삶에서 타자와의 충돌은 사건을 일으키고 사건은 타자와의 마주침에 의해 일어나니까. 다시 말해 타자와 사건이 없다면 인간의 운명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삶은 어떤 새로운 것도 생성·창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운명을 만들어나가고 삶을 변화시키는 힘의 요소, 즉 실체는 다름 아닌 ‘타자와 사건의 우발적인 충돌’이 된다.

장자의 수많은 우화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우화를 들자면 ‘조삼모사의 우화’를 꼽을 수 있다. 이 우화는 대개 결과가 같은 줄은 모른 채 눈앞의 이익만 보는 어리석음을 뜻하거나 또는 간사한 꾀로 다른 사람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사기꾼이나 협잡꾼의 행위를 뜻하는데 사용된다. 그런데 철학자 강신주는 이 우화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강신주의 해석에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저공이 원숭이를 속여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원숭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저공은 항상 키우는 원숭이들에게 만족할 만한 먹이, 즉 도토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자 어쩔 수 없이 원숭이들에게 제공하는 식량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저공은 원숭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먹이를 줄이지 않고 원숭이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아침에 세 알, 저녁에 네 알의 도토리를 줄 수밖에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원숭이들은 저공의 생각과는 다르게 모두 크게 화를 냈다. 저공은 생각을 바꿔 다시 원숭이들에게 ‘그렇다면 아침에 네 알, 저녁에 세 알을 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며 저공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강신주는 이 우화에서 중요한 사실은 저공의 첫 번째 제안을 원숭이들이 받아들였다면 두 번째 제안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저공의 두 번째 제안을 강제한 것은 원숭이라는 ‘타자’였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우화의 핵심 포인트라는 것이다.

저공의 악화한 경제 사정은 그와 원숭이들의 삶에 발생한 뜻밖의 사건이다. 뜻밖에 마주하게 된 우연한 사건에 저공은 예전처럼 식량을 계속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숭이들에게 첫 번째 제안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원숭이들의 거부는 저공에게는 ‘타자와의 우발적 충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화에서는 저공이 자신의 입장을 바꿔 두 번째 제안을 했지만 만약 그가 원숭이들의 거부를 무시하고 첫 번째 제안을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원숭이들이 반발해 뛰쳐나가 저공은 사랑하는 원숭이들을 모두 잃어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삼모사의 우화’는 장자가 ‘타자라는 존재’와 ‘타자와의 마주침’이야말로 운명(삶)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는 것이다. (강신주 지음,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오월의 봄. 2014. p528∼529 참조)

결국 ‘조삼모사의 우화’는 우발적인 사건과 타자와의 충돌에 대한 태도와 반응 또는 조정과 대응 여부에 따라 운명은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희극과 비극의 변곡선(變曲線)을 구성하게 된다는 인문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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